지방선거 단상
from 2010/06/03 12:02
승리도 패배도 아닌... 그 중간의 무언가다. 이것은 희망인가? 희망고문인가?

트위터가 선거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데, 이건 언론에서 늘 지랄하는 네티즌의 힘 드립의 일종이다. 네티즌의 힘은 늘 한계가 있다. 트위터 사용자는 한줌밖에 안되며, 그중에서도 진보적 글을 쓰는 사람을 보수적 성향의 사람이 팔로윙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게다가 보수적 성향의 사람이 인터넷 글로 인해 성향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어찌되었든, 재미있는 선거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로 희망했던 것이 몇개나마 이뤄진 최초의 선거였다.

1. 노회찬 5% 득표
2. 곽노현 당선
3. 김두관 당선
4. 오세훈 시망

2번과 3번이 되었으니 뭐 즐겁다. 그리고 오세훈은 떨어지진 않았어도 서울시의회를 야권이 잡아 시정운영이 어렵게 되었다. 절반정도의 시망이라고 봐야되나?

개인적인 이익으로 보자면-_- 사실 이틀전까지만해도 몰랐는데, 내가 들고있는 주식의 최대주주의 형;;;;이 모 군수;;로 출마했고 당선되었단다. 팔 타이밍을 놓쳐서 언제나 팔까하고 들고 있었는데 이거 원 무슨 일인지.

노회찬씨의 3% 득표는 여러가지로 아쉽다. 5%정도는 먹어주길 진심으로 바랬고 작은 힘도 보탰는데 쩝..
노빠들의 지랄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안남기겠다. 가치가 없다.

곽노현씨는 사실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큰 희망중 하나였지만, 교육에 대한 인식이 매우 보수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진보적 교육감이 서울에서 당선되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며 가장 큰 희망을 갖게 되는 계기이다. 정말 새로운 희망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민주당에 바라는 점은, 진정성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한윤형씨의 말대로 진보정당의 표만 갖고 가지말고 진보정당의 정책도 갖고가길 바란다. 민주당은 늘 진보정당의 이미지와 표를 갖고가고 한나라당의 정책을 갖고갔다. 민주당이 삽질하면 지금 한나라당의 후폭풍과는 비교도 안될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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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3 12:02 2010/06/03 12:02
단순하다.

북한은 "니네가 아무리 지랄을 해도 난 왕따가 아니라능!!!"이라고 전세계에 외쳤다.
중국은 얻은게 더 큰데,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중국은 팍스아메리카나로 이야기되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의 대항마가 되어있다. 또한, 이미 서방에서는 중국이 1인자가 되는 세계에 대한 우려를 여러곳에서 나타내고 있다. (링크) 중국은 그것에 대한 대답을 하였다. 6자회담은 중국이 발의하고, 의장국이 되어있는 중국의 감독하에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자신이 강압적이지 않으면서, 진지하고 인내심있게 천천히 관련국을 포섭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미국과 다르다. 강압적으로 하지 않는다. 이것봐라."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난 진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중국이 동아시아를 지배했던 과거 역사를 보면 한족이 중국을 지배했을 때, 중국 외의 지방을 침략하지 않아왔다. 그냥 주종 혹은 형제관계를 맺고 그것에 대한 성의표시만 하면 내정간섭이라던지, 정부를 무너뜨리는 등의 행위를 하지 않아왔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큰 한걸음을 내딛고 있다.

미국의 대답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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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7 23:12 2010/05/07 23:12
기본소득 블로그 선언
from 2010/04/20 10:01
시발;;점은 여기


기본소득 블로그 선언


이 도시에 남은 것은 성장주의 체제와 그를 보호하기 위한 과시적 통치 뿐이다. 이 나라의 모든 도시는 외환위기와 금융자본주의의 과도기를 지나며 저마다 상표가 붙여졌고, 모든 공기업은 공공성이 아닌 매출액으로 평가받고 있다. 모든 개인의 주거권, 사회권, 참정권은 물론이고 목숨 그 자체마저도 손익률에 기준해 평가되는 지금, 모든 도시민 역시 성장연합의 상업적 소유품일 뿐이다.

신자유주의 수탈 체제는 모든 사회공공성을 파괴하고 개인의 삶마저 갉아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탈당하는 것은 현재와 과거 뿐만이 아니다. 고작 1년 동안, 100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금융채무자라는 굴레를 덮어썼다. 우리의 미래는 점점 더 빠르게 수탈당하고 있다. 아비규환의 땅 위에서 정권은 이 나라가 선진국의 국격을 이룩했다며 축배를 들고, 우리가 쌓아올린 것은 언제나 우리의 것이 아니다. 가당치 않게도 민주공화국이란 상표로 포장된 이 나라에서, 우리는 정치경제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모두는 오로지 자산이고, 자원이며, 상품일 뿐이다.

생계를 잇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쌓여가는데도 지배자들은 우리에게 더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파업하지 말고, 투쟁하지 말고, 노동조합조차 만들지 말고, 눈을 낮추고, 일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우리에겐 일할 자리도 없다.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어떠한 공공재도, 어떠한 자연적 유산도 허락하지 않는다. 교통과 역사를 자본에게 넘겨주고, 강과 산을 개발산업에게 제물로 바치고, 급기야 사람마저도 생산하려 든다. 자녀를 생산하지 않은 게으른 부모에겐 복지를 제한하고, 지하철 역사에는 자녀를 많이 생산하지 않은 자를 죄인으로 묘사하는 광고를 붙이고 있다. 우리에겐 사회권도, 주권도, 생존권도, 그 어떠한 인격도 없다. 경제적으로 배제된 모든 이들은 인간사회로부터도 배제되었다.

봉쇄된 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든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배제된 인격에게는 등가교환의 시장적 권리마저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에게 ‘법과 원칙’이라는 칼날을 들이대지만, 있는 자는 법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지난해 정권에 의해 단행된 이건희의 단독특별사면은 만인이 법 앞에 불평등하다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을 역사에 각인했다. 만민의 자유를 탈취한 자들은 스스로에게 자유주의라는 기만적 명분을 휘장 삼아 두른다. 그 휘장 아래에서 빈민의 자유는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사상의 자유는 법적으로도 통제당한다. 그들은 심지어 자유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지키자고 주장한다.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지배할 자유이며, 착취할 자유이고, 수탈할 자유다. 피지배자의 자유가 원천적으로 통제당하는 그들만의 사회에서, 물질적으로 독립되지 않은 그 어떤 누구도 법의 주인이, 국가의 주인이, 사회의 주인이, 자신의 주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법의 주인, 국가의 주인, 사회의 주인, 자신의 주인이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기에.

공화적 자유는 타인의 지배와 간섭 위에서는 보편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사회의 오랜 역사가 이를 실증해 왔고, 오늘날 정권이 노골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용산 남일당에 몽둥이와 방패를 들고 난입한 경찰과 용역들은 지배자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쌍용자동차의 노동자들과 맞서 싸운 구사대는 자본가들 본인이었던가? 아니다. 침략전쟁에 나선 파병군인들은 관료들이었던가? 아니다. 모두가 빈민, 부자유한 자, 그리고 노동자였다. 상처를 주는 역할도, 상처를 받는 역할도 부자유한 자들의 몫이다. 부자유한 우리는 점점 더 악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본질적 모습이 아니다.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모습일 뿐이다. 물질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자들에게 지배와 간섭은 일상이다.

수탈당한 자유와 권리는 구걸로 돌려받을 수 없다. 그렇다고 흥정으로 돌려받을 수도 없다. 애시당초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모두 수탈당한 우리가 흥정할 자산이 어디에 남아있는가? 수탈당한 모든 것을 돌려받을 방법은 역수탈 뿐이다. 이윤으로 전환된 모든 개인의 삶, 기여 없이 증식하는 자본가치, 이 모든 것은 보편적 개인이 돌려받아야 한다. 모든 불로소득과 투기소득은 강제적 환수를 통해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되어야 한다. 사회는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삶에 필요한 제반요건을 보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필요한 부자유는 오직 ‘탈취의 부자유’ 뿐이다. 오직 우리가 같은 공화국의 국민이라는 이유만으로.

헌법1조는 이 나라를 ‘민주공화국’이라 규정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은 모든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나라이며, 모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실질적 자유를 가지는 나라이다. 국민주권은 국민 모두의 복지라는 사회경제적인 기본 조건이 충족된 경우에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보편적이고 충분한 복지는 민주공화국의 기초적 토대이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모든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 노동이나 자산, 가족관계나 그 어떤 것도 민주공화국의 복지를 위한 거래대상이 될 수 없다. 민주공화국의 복지는 보편적이며, 조건이 없어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모든 국민은 그들이 실질적인 주권자가 되기 위하여 물질적 독립을 보장받아야 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억류된 자유와 권리에 대한 요구이며, 민주주의 그 자체에 대한 요구이다. 억류된 자유를 해방하라.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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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0 10:01 2010/04/20 10:01
요글에 대한 비평글입니다. 전에 말했듯이 이걸 영어로 써서 제출했습니다. 완전 힘들었다능;;;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트위터에서 짧은 글만 쓰다보니 긴글은 뒤로 갈 수록 중언부언;;; 저런 결론도 내기 쉽지 않았다능;; 글이나 운동이나 꾸준히 안쓰고 안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외신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비판적인 글들을 보면 한국의 기업 도와주기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옳은 일인가? 아니, 옳다기보다는 자기 매체의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또한, 자국 기업에게 여러가지로 지원하는 일이 한국 혹은 동아시아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특별한 일인가?
 많은 이들이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기억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이유는 무엇인가? 부시대통령은 이라크가 911테러와 연관이 있고, 이라크안에 대량살상무기를 숨겨놓고 있다고 하였다. 그에 대한 반대자들의 주장은 부시가 공화당의 지지세력인 군수산업의 재고정리, 신제품 성능시험과 더불어 석유산업의 이권쟁취, 석유거래의 달러화 유지를 위해 억지를 쓰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한지 7년이 되었지만 이라크 내의 대량살상무기는 그 누구도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고, 반대자들의 주장처럼 군수산업과 석유산업은 이권을 찾았으며 석유거래의 달러화는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리만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신용위기 이후 대다수의 국가들이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구제금융을 진행하였다. 그 예는 일일히 들 수도 없고, 그것에서 예외인 나라는 없다.
 이러한 예들중에 이코노미스트지가 그것에 반대한 일이 있는가? 최소한 한국은 삼성이나 현대를 위해 미사일을 타국에 쏘지 않는다. 또한, 가난한 국가들이 자국 산업을 육성한다고 트집을 잡지 않아왔다. 보수적인 외신지의 기자들은 한국의 자국산업 육성에 대해 많은 시비를 걸지만 정작 상기 두건과 같은 일에 시비를 걸지 않는다. 기껏해야 현재 경제흐름에 따른 보호무역으로 갈 것에 대해 우려하는 원론적인 수준의 기사들만 생산할 뿐이다.
 난 르몽드디플로마티크같이 국가가 은행을 포함한 기업에게 돈을 지원해주는 것을 비난하는 언론이 한국의 경제 정책에 대해 똑같은 논조로 비판하는 것을 욕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수지들이 그러는 것을 보면 그들의 이중적 잣대에 대해 실소가 나올 뿐이다. 왜 서유럽 국가들은 과거 미국과의 자유무역을 주장하다가 미국의 경제력이 자신들보다 좋아지자 자유무역 주장을 철회하였는가? 스스로가 한 경제성장 방법을 개발도상국들이 이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가?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 사다리걷어차기에 다름아니라고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삼성을 필두로 하는 한국 산업의 문제는 단순히 국가가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더 큰 원인은 기업의 배은망덕함이며 정말 핵심적인 원인은 국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사카린 밀수공장에 불과했던 삼성이 어떻게 세계 일류 기업이 되었나? 소규모 건설사에 불과했던 현대가 어떻게 세계 일류의 자동차 생산 기업이 되었나? 박정희의 군사 쿠테타 성공 및 정권 찬탈 후 박정희는 정권 유지를 위해 경제성장에 치중을 했고,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비교적 잘사는 농촌을 무너뜨리고, 베트남전에 참전을 하고,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 하여 그 돈을 종자돈으로 하여 국내 기업에 지원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국민의 돈, 목숨, 자존심을 기업에 투자를 하였고, 그 결과 지금의 재벌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벌어들인 돈을 다시 베풀라고 요구를 해야 하지만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비정상으로 매도되고 있다. 결국 자신의 소중한것을 내주고 키운 그들의 배은망덕함을 적극적으로 용납하는 이들에 의해 한국 재벌의 모순이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는 세계 1위의 기업이 된 지금까지도 그들은 공공재 사용비에 대해 혜택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큰 혜택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은 그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인지부조화 역시 한국 재벌의 모순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 좌파들 내에서 삼성은 한국 재벌의 악의 축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들 사이의 삼성 경영진의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명철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전에 삼성노조는 용납하지 못한다.' 이다. 좌파뿐만아니라, 삼성빠돌이와 무관심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중 삼성을 조롱하는 의미로, 삼성제국 혹은 건희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저 조롱에 들어가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삼성=이건희, 마치 루이 14세의 말을 많은 국민들이 삼성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조롱하고 있지만, 중요한 순간 순간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이건희의 몰락=삼성의 몰락으로 받아들이며, 그들보다 조금 유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이건희 가문=삼성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에반해 삼성에 반대하고 있는 일부 자유주의자들과 좌파 세력은 삼성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이건희 사면 이후 그 불씨가 다시 지펴졌으며, 이건희의 경영 복귀로 인해, 비록 찻잔속의 태풍에 불과하지만, 삼성 해체에 대한 당위성과 그 실현방안을 놓고 지속적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논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삼성 해체후의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삼성의 경영권을 이건희로부터 빼앗아 그룹을 해체하자는 것인데, 경영권을 빼앗은 이후 그 경영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시장에 내놓을 것인가? 국가에게 맡길 것인가? 혹은 근로자가 운영하는 회사로 할 것인가? 셋 중 좋은 대안이 있는가?

 시장에 내놓게 된다면 삼성의 노른자위들을 인수할 수 있는 기업은 한국내에서 찾기 어렵고,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다국적 기업과 비교하면 그 힘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또한 이건희가 무리를 하면서까지 했던 것이 해외 자본으로부터의 경영권보호이다. 국내 자본은 삼성의 주요 기업을 집어삼키기에 무리가 있다. 해외 자본이 삼성을 인수하게 되면 매우 곤란한 상황이 연출될 여지가 많다. 쌍용자동차를 보면 알 수 있다. 다국적기업은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는 지사를 언제라도 없애거나 포기할 수 있다. 10여년전 카고텍은 일본의 가야바라는 회사를 인수했고, 작년 동아시아 3국에 모두 지사가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자 일본의 과거 본사를 없애버렸다. 또한, 삼성을 비판하는 것 중 하나가 삼성의 그룹이미지 광고만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국적 기업은 이미지광고를 하지 않는다. 최소한 국내회사는 국민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국적기업이 이건희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근로자가 운영하는 회사의 경우는 상황이 더 어렵다. 삼성은 오랫동안 이건희를 최고 정점으로 하여 그의 측근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형태로 운영하였다. 이번에 이건희가 복귀하자 많은 삼성인들이 기뻐한 것은 이건희가 지시를 내려주지 않는 삼성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사실 이것도 조금 재미있는데, 이건희와 그의 측근들이 이재용의 경영능력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어찌되었든, 삼성은 이미 수직적 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회사이다. 이건희가 회사의 목표를 설립하고 삼성경제연구원이 이론을 내놓고, 구조본이 실행방안을 내놓아 각 구성원들이 실행토록 하는 그런 구조로 짜져있고 이미 삼성의 구성원들은 그에 충분히 길들여져 있다. 그런 그들에게 갑자기 모든 권한이 주어지면 그들이 과연 적응할 수 있을지 그것 자체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결국, 삼성의 구조는 여러가지 차원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지금의 삼성을 그대로 두면 경제정의, 법치주의 문제를 갖게 된다. 이런 모순을 해결책으로 나는 장하준교수의 사회적 대타협론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 재벌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불안점은 자신의 기업 지배력이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건희가 얼마전 감옥에 갔던 이유도 부족한 자본력으로 이재용에게 지배권을 주기 위해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또한 대다수의 재벌기업들이 그런 행위를 하고 있으며, 그것이 한국의 정서상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평안한 삶이다. 고용이 안정되고, 자녀들을 교육시키는데 충분한 수준의 돈을 버는 것이다. 그것이 달성되려고 대기업들이 더 커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길 희망하는 것이다. 재벌들의 요구와 일반 국민들의 요구는 상호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실재로 유한 킴벌리에서는 이 두가지 요구가 함께 이루어 지는 모델을 보여주었다. 유한킴벌리는 98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재고용을 하였고, 직원교육을 시켰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충성스럽고 유능하며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이런 모델을 기업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하여야한다. 요구하지 않으면 재벌은 변화하지 않는다. 87년 이전 울산은 그냥 공단일 뿐이었다. 그러나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울산의 대부분의 공장들은 직원들에 대한 임금, 보너스, 복지에 상당히 투자하였으며, 그로 인해 울산은 한국내에서는 노동자들이 가장 윤택한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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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9 12:29 2010/04/19 12:29
대학에서 공부도 안했고, 분야도 그쪽이 아니라(경제학과였음) 생소했던 단어인 JIT(Just In Time)의 창안회사인 도요타가 매우 힘들어하고 있다.
처음에 JIT의 초기 개념인 자재 입고와 불출의 동시행동을 우리회사에서도 하려고 했던 것이 사실.... 그리고 여러가지를 보다가 아... ㅅㅂ 이건 불가능한 일(이라기 보다는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일) 이구나 싶었다. 자재 분야에서 JIT는 좋게 말해 입고 시점과 불출 시점을 같게 만들어 자재의 보관시 생길 수 있는 비용(파손비용, 보관비용, 이자비용 등등)을 소멸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경영법이다. 그리고 그것의 본질은 NIMBY(Not In My Back Yard)다. 내 공장에 창고를 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일 뿐. 결국 창고는 하청업체에 생기게 된다. JIT 열풍으로 인해 이쪽 업계 협력사(라고 쓰고 말하고 속으로는 하청업체라고 생각한다)의 창고는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물론 그런 과정에서도 자재비는 낮아졌다.

많은 이들이 도요타의 몰락에 쾌재를 부르거나 혹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런데 뭐.... 달은 기울고 영웅은 늙고 기업은 쇄락한다. 이건 자본주의의 원리가 아닌 그냥 옛날부터 그래왔다. 부자는 망하고 빈민은 성공한다. 이런 싸이클을 강하게 막으려고 하면 그 반동으로 사회가 무너진다.

결국 도요타는 그 유별난 경영법으로 성공했고, 그 경영법으로 인해 위기를 맞았다. 여기서 변화를 꾀할 것인지 더욱더 강력한 통제력을 보일 것인지는 재미있는 관전포인트겠다. 내부자라면 괴로운 일이지만,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인생은 가까이에서는 비극이고 멀리서는 희극이다.' 각종 업계에서 종사하는 분들은 타산지석으로 삼아 변화를 꾀하면서도 즐겁게 관람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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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5 10:01 2010/02/05 10:01
옛날에 어디선가 읽었던 P&G가 미국의 세제업계를 주름잡았던 방법에 대한 것이 생각난다.
요즘은 모르겠지만, 그 책에 의하면 90년대 미국 쇼핑센터의 세제코너를 보면 수많은 브랜드 있지만, 그 메이커는 하나같이 P&G였다고 한다. 물론 일부 다른 메이커도 있었지만, 다 합쳐봐야 듣보잡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 비결은 P&G에서는 수많은 브랜드를 계속 내고, 브랜드끼리 치열한 경쟁을 하여 다른 메이커에서는 그 경쟁에 낄 수도 없게끔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세종시 논란을 보면, 친이VS친박의 구도인데, 결국 한나라당VS한나라당이다. 이명박이 한나라당을 깨고 나갈리도 없고, 박근혜도 자기가 그렇게 개고생해서 살려놓은 당을 박차고 나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 주위의 만류도 상당할 것이고. 결국 친이VS친박의 싸움에서 여당은 전혀 발붙일 곳도 없고, 이슈도 만들고 있지 못한다. 게다가 세종시가 의외로 엄청난 정국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지금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슬쩍 끝내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이 세종시를 둘러싼 정치싸움이 한나라당에서 계획한 기타 정당의 여론 만들기를 없애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라고까지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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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3 13:26 2010/02/03 13:26
정의가 실종된 사회
from 2010/01/15 16:50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만 본다면...

1. 세종시관련 보도지침 발행
2. 일본은 없다 표절로 드러남

이것들이 전혀 이슈가 되지 못하고 이슈는 오히려 P FACTOR를 관리하려고 했다는 것만 논란이 되고 있다. 그것도 한나라당 안에서만.......

그리고 국제적으로 본다면 아이티 지진참사다.
아이티는 한때 캐리비안의 최대 부국중 하나였다. 그런데, 미국에서 침공해서 식민지화 하고 해방한 후에 75%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도 세웠지만 외국에서 사주한 쿠데타에 의해 정권이 무너졌으며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었다. 물론 지진을 갖고 왜이러냐고 할 수도 있는데, 재작년 허리케인에의해 아이티에서 죽은사람은 1000명이 넘었다. 인접국가인 쿠바는 4명밖에 안되었고. 그렇게 해놓고선 미국에서는 지원을 해야된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얼마전 프로젝트 신디케이트라는 매체에서 미국대신 중국이 지배한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였다. 헐..... 지금은 유토피아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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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5 16:50 2010/01/15 16:50
역시 가카
from 2010/01/14 18:35
2010년도판 보도지침??

놀랄것도 없다. 여론의 반응이 없다면 그것이 놀랄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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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4 18:35 2010/01/14 18:35
신종플루 조작설이라?
from 2010/01/12 18:10
뭐.... 저런 의문이 있을 수도 있는건 사실이지만, 그걸 특종보도한 쪽이 THE SUN이라서 신뢰가 영~ 안간다. THE SUN 영국 황색언론의 최고봉 신문인데.... 늘 선정적인 보도와 3페이지의 세미누드사진으로 매우 유명한.... 그런 신문이다. 이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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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2 18:10 2010/01/12 18:10
아수라장 된 친북인명사전 회견장

으앜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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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6 12:37 2009/11/26 1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