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글에 대한 비평글입니다. 전에 말했듯이 이걸 영어로 써서 제출했습니다. 완전 힘들었다능;;;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트위터에서 짧은 글만 쓰다보니 긴글은 뒤로 갈 수록 중언부언;;; 저런 결론도 내기 쉽지 않았다능;; 글이나 운동이나 꾸준히 안쓰고 안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외신들의 한국 경제에 대한 비판적인 글들을 보면 한국의 기업 도와주기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옳은 일인가? 아니, 옳다기보다는 자기 매체의 논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가? 또한, 자국 기업에게 여러가지로 지원하는 일이 한국 혹은 동아시아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특별한 일인가?
많은 이들이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기억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이유는 무엇인가? 부시대통령은 이라크가 911테러와 연관이 있고, 이라크안에 대량살상무기를 숨겨놓고 있다고 하였다. 그에 대한 반대자들의 주장은 부시가 공화당의 지지세력인 군수산업의 재고정리, 신제품 성능시험과 더불어 석유산업의 이권쟁취, 석유거래의 달러화 유지를 위해 억지를 쓰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미군이 이라크를 점령한지 7년이 되었지만 이라크 내의 대량살상무기는 그 누구도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고, 반대자들의 주장처럼 군수산업과 석유산업은 이권을 찾았으며 석유거래의 달러화는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리만브라더스 사태로 인한 신용위기 이후 대다수의 국가들이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구제금융을 진행하였다. 그 예는 일일히 들 수도 없고, 그것에서 예외인 나라는 없다.
이러한 예들중에 이코노미스트지가 그것에 반대한 일이 있는가? 최소한 한국은 삼성이나 현대를 위해 미사일을 타국에 쏘지 않는다. 또한, 가난한 국가들이 자국 산업을 육성한다고 트집을 잡지 않아왔다. 보수적인 외신지의 기자들은 한국의 자국산업 육성에 대해 많은 시비를 걸지만 정작 상기 두건과 같은 일에 시비를 걸지 않는다. 기껏해야 현재 경제흐름에 따른 보호무역으로 갈 것에 대해 우려하는 원론적인 수준의 기사들만 생산할 뿐이다.
난 르몽드디플로마티크같이 국가가 은행을 포함한 기업에게 돈을 지원해주는 것을 비난하는 언론이 한국의 경제 정책에 대해 똑같은 논조로 비판하는 것을 욕하지 않는다. 그런데, 보수지들이 그러는 것을 보면 그들의 이중적 잣대에 대해 실소가 나올 뿐이다. 왜 서유럽 국가들은 과거 미국과의 자유무역을 주장하다가 미국의 경제력이 자신들보다 좋아지자 자유무역 주장을 철회하였는가? 스스로가 한 경제성장 방법을 개발도상국들이 이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가?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 사다리걷어차기에 다름아니라고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삼성을 필두로 하는 한국 산업의 문제는 단순히 국가가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다. 더 큰 원인은 기업의 배은망덕함이며 정말 핵심적인 원인은 국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사카린 밀수공장에 불과했던 삼성이 어떻게 세계 일류 기업이 되었나? 소규모 건설사에 불과했던 현대가 어떻게 세계 일류의 자동차 생산 기업이 되었나? 박정희의 군사 쿠테타 성공 및 정권 찬탈 후 박정희는 정권 유지를 위해 경제성장에 치중을 했고,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비교적 잘사는 농촌을 무너뜨리고, 베트남전에 참전을 하고,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 하여 그 돈을 종자돈으로 하여 국내 기업에 지원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국민의 돈, 목숨, 자존심을 기업에 투자를 하였고, 그 결과 지금의 재벌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벌어들인 돈을 다시 베풀라고 요구를 해야 하지만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비정상으로 매도되고 있다. 결국 자신의 소중한것을 내주고 키운 그들의 배은망덕함을 적극적으로 용납하는 이들에 의해 한국 재벌의 모순이 생겨나고 있다. 심지어는 세계 1위의 기업이 된 지금까지도 그들은 공공재 사용비에 대해 혜택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큰 혜택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은 그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
그와 더불어 인지부조화 역시 한국 재벌의 모순을 야기하고 있다. 한국 좌파들 내에서 삼성은 한국 재벌의 악의 축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그들 사이의 삼성 경영진의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이명철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전에 삼성노조는 용납하지 못한다.' 이다. 좌파뿐만아니라, 삼성빠돌이와 무관심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중 삼성을 조롱하는 의미로, 삼성제국 혹은 건희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저 조롱에 들어가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삼성=이건희, 마치 루이 14세의 말을 많은 국민들이 삼성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조롱하고 있지만, 중요한 순간 순간마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이건희의 몰락=삼성의 몰락으로 받아들이며, 그들보다 조금 유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조차 이건희 가문=삼성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에반해 삼성에 반대하고 있는 일부 자유주의자들과 좌파 세력은 삼성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이건희 사면 이후 그 불씨가 다시 지펴졌으며, 이건희의 경영 복귀로 인해, 비록 찻잔속의 태풍에 불과하지만, 삼성 해체에 대한 당위성과 그 실현방안을 놓고 지속적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논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삼성 해체후의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삼성의 경영권을 이건희로부터 빼앗아 그룹을 해체하자는 것인데, 경영권을 빼앗은 이후 그 경영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라는 문제가 있다. 시장에 내놓을 것인가? 국가에게 맡길 것인가? 혹은 근로자가 운영하는 회사로 할 것인가? 셋 중 좋은 대안이 있는가?
시장에 내놓게 된다면 삼성의 노른자위들을 인수할 수 있는 기업은 한국내에서 찾기 어렵고, 혹시 있다고 하더라도 다국적 기업과 비교하면 그 힘은 부족하기 짝이 없다. 또한 이건희가 무리를 하면서까지 했던 것이 해외 자본으로부터의 경영권보호이다. 국내 자본은 삼성의 주요 기업을 집어삼키기에 무리가 있다. 해외 자본이 삼성을 인수하게 되면 매우 곤란한 상황이 연출될 여지가 많다. 쌍용자동차를 보면 알 수 있다. 다국적기업은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는 지사를 언제라도 없애거나 포기할 수 있다. 10여년전 카고텍은 일본의 가야바라는 회사를 인수했고, 작년 동아시아 3국에 모두 지사가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자 일본의 과거 본사를 없애버렸다. 또한, 삼성을 비판하는 것 중 하나가 삼성의 그룹이미지 광고만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국적 기업은 이미지광고를 하지 않는다. 최소한 국내회사는 국민의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다국적기업이 이건희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근로자가 운영하는 회사의 경우는 상황이 더 어렵다. 삼성은 오랫동안 이건희를 최고 정점으로 하여 그의 측근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형태로 운영하였다. 이번에 이건희가 복귀하자 많은 삼성인들이 기뻐한 것은 이건희가 지시를 내려주지 않는 삼성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다. 사실 이것도 조금 재미있는데, 이건희와 그의 측근들이 이재용의 경영능력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어찌되었든, 삼성은 이미 수직적 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회사이다. 이건희가 회사의 목표를 설립하고 삼성경제연구원이 이론을 내놓고, 구조본이 실행방안을 내놓아 각 구성원들이 실행토록 하는 그런 구조로 짜져있고 이미 삼성의 구성원들은 그에 충분히 길들여져 있다. 그런 그들에게 갑자기 모든 권한이 주어지면 그들이 과연 적응할 수 있을지 그것 자체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결국, 삼성의 구조는 여러가지 차원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지금의 삼성을 그대로 두면 경제정의, 법치주의 문제를 갖게 된다. 이런 모순을 해결책으로 나는 장하준교수의 사회적 대타협론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 재벌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불안점은 자신의 기업 지배력이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못할까 걱정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이건희가 얼마전 감옥에 갔던 이유도 부족한 자본력으로 이재용에게 지배권을 주기 위해 불법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또한 대다수의 재벌기업들이 그런 행위를 하고 있으며, 그것이 한국의 정서상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평안한 삶이다. 고용이 안정되고, 자녀들을 교육시키는데 충분한 수준의 돈을 버는 것이다. 그것이 달성되려고 대기업들이 더 커서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길 희망하는 것이다. 재벌들의 요구와 일반 국민들의 요구는 상호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다. 실재로 유한 킴벌리에서는 이 두가지 요구가 함께 이루어 지는 모델을 보여주었다. 유한킴벌리는 98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재고용을 하였고, 직원교육을 시켰으며, 그렇게 만들어진 충성스럽고 유능하며 풍부한 인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있다. 이런 모델을 기업들에게 강력하게 요구하여야한다. 요구하지 않으면 재벌은 변화하지 않는다. 87년 이전 울산은 그냥 공단일 뿐이었다. 그러나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울산의 대부분의 공장들은 직원들에 대한 임금, 보너스, 복지에 상당히 투자하였으며, 그로 인해 울산은 한국내에서는 노동자들이 가장 윤택한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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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서초, 송파 대박-_-
오세훈은 역시 가카하고 이미지가 너무 연결이 안되는걸까요;;
근데 중랑은 뭘까요;;
중랑구사는 아는 언니는 매우 좌절중;; 유일하게 서민구역 한나라당 구청장;;
중랑구는 금란교회때문에 그렇다는 말이 있네. 흠... 재미있는 주장이야.
그리고 오세훈은 가카랑 이미지 연결이 정말 안되지. 하는 짓도 오세훈쪽이 더 세련된 느낌이고. 생긴건 넘사벽. 솔직히 지금 대통령이 오세훈이면 이렇게까진 쪽팔리진 않을거야. 외국인이 우연히 우리나라 대통령 관련 뉴스를 봤는데 그 얼굴이 명박이인 것과 오세훈인것과 천지차자나? 지금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 미적감각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가질거야.